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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그랜드 투어러, 애스턴마틴의 역사 #1

AUTMAG

by Rollingkr 2019. 7. 2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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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마틴, 이름만 들어도 수 가지 단어가 떠오른다. 스완 윙 도어, 영국신사, 스포츠카, 007... 등등 많은 수식어를 떠올리며 애스턴마틴이라는 브랜드를 떠올리곤한다. 1913년 처음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해 무려 106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자동차를 만들어온 애스턴마틴. 그들의 역사 속에는 어떤 자동차들이 잠들어있을까?

 

라이오넬 마틴 그리고 로버트 뱀포드
(1913)

애스턴마틴은 이튼칼리지 출신이었던 라이오넬 마틴(Lionel Martin)과 그의 친구였던 로버트 뱀포드(Robert Bamford)로부터 시작되었다. 1913년 1월 15일 두 인물은 당시 싱어(Singer)라는 브랜드의 자동차를 튜닝해 다시 판매하는 일로 애스턴마틴의 전신인 '뱀포드 엔 마틴(Bamford & Martin)'이라는 브랜드를 설립하게 된다. 하지만 기존에 생산되는 자동차를 튜닝하여 다시 판매하는 과정에서 자동차의 개성과 아이덴티티가 담기는 힘들다. 특히 라이오넬 마틴은 소수를 위한 투어링카 제작을 원헀다.

그리하여 라이오넬 마틴은 1,389cc 4기통 엔진과 이소타 프라스키니의 자동차 섀시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차량을 제작하였고 '하이브리드'라고 별명까지 붙여주며 차량을 가지고 애스턴 클린턴 힐클라임(Aston Clinton Hillclimb) 자동차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이쯤 되면 눈치 챘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애스턴마틴'의 브랜드 명은 바로 이 대회의 앞글자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다.

1914년 애스턴 마틴이라는 이름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1915년 3월, 애스턴 마틴에서 제작한 첫번째 자동차가 만들어지게 된다. 투박한 차량의 모양으로 인해서 '석탄통(Coal shuttle)'이라고 불렸던 이 자동차는 몇 대 만들어지지 못하고 1914년에 발발한 세계 1차대전으로 인해서 잠시 차량을 생산하지 못하고 주춤한 기간을 보내게 된다. 이후 1919년부터 애스턴 마틴은 다시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제조하기 시작한다.

 

가장 오래된 애스턴 마틴, A3
(1921)

A3이전에도 애스턴 마틴은 차량을 제작했지만 모두 한 대씩만 만들어져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A3는 현재 남아있는 애스턴 마틴 차량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A3는 2년이라는 시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1921년 판매되었으며 1,389cc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최고출력 50마력의 힘과 최고시속은 137km/h에 달했다.
당시 라이오넬 마틴은 자신이 제작한 차량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서 경주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고 A3를 몰고 브루클랜즈 자동차 경주에서 시속 136km/h까지 달리며 주목을 받았다.

애스턴 마틴은 조금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스포츠'라는 이름을 가진 대중적인 차량을 선보이며 성공적인 길을 걷나 싶었지만 라이오넬 마틴이 갑작스럽게 회사를 정리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비판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애스턴 마틴은 1926년 엔지니어 아우쿠스투스 세자레 베르텔리(augustus cesare bertelli)와 카레이서로 활동하던 윌리엄 렌윅(William Renwick)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이 둘은 비행기 공장에서 차량을 제조하며 애스턴 마틴을 계속 이끌어 나간다.

 

베르텔리가 만든 에스턴 마틴, LM3
(1929)

아우쿠스투스 세자레 베르텔리가 애스턴 마틴을 이끌어 나가면서 르망 경주를 비롯한 다양한 레이스에 나가 애스턴 마틴의 기술력을 과시하고 홍보 효과를 얻고자 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량이 바로 LM3, LM은 르망의 줄임말이며 당시 르망 경기를 위해서 만들어진 차량이다.
1.5L 직렬 4기통 엔진을 얹고 시속 161km/h이 넘는 속도로 질주할 수 있었다. 베르텔리는 LM3의 운전석에 직접 올라타 경주를 하기도 하였으며 나름 좋은 성적을 만들어내며 큰 홍보효과를 보기도 하였다.

 

더 강력한 르망 머신, LM15
(1934)

르망 머신으로 더 강력해진  LM15는 투어리스트 트로피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한 차량의 업데이트 된 버전으로 우승을 거머쥐게 만들어준 차량이기에 LM15 또한 굉장한 퍼포먼스와 성능을 갖추고 있었다.
베르텔리가 항상 사용하는 1.5L 직렬 4기통 엔진을 장착하고 100마력이 넘는 성능을 갖췄다. 시속 160km/h이 넘는 속도로 질주할 수 있었고 부드러운 핸들링과 자연스러운 4륜구동의 작동으로 경쟁 차량들보다 훨씬 빠르게 코너를 탈출 할 수 있었다.

당시 르망을 비롯한 많은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애스턴 마틴은 세계 2차대전 이전에 젊은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고 애스턴마틴은 이러한 스포츠카만 제작한 것이 아닌 4인이 탑승할 수 있는 세단부터 투어링 카까지 많은 자동차를 만들어냈다.

 

2차 세계 대전과 아톰
(1939)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고 애스턴 마틴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군수 물자를 생산하며 회사를 이끌어나가면서 자동차 회사 브랜드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미래의 자동차라는 하나의 컨셉카를 만들어내개 된다. 1938년 처음 쇼카(지금의 컨셉카와 같은 개념)가 등장했는데 애스턴 마틴은 혁신적인 디자인을 가진 아톰이라는 차량을 만들어내면서 애스턴 마틴의 미래를 다짐했다.

이 아톰은 단순히 쇼카에 머물지 않고 애스턴 마틴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애스턴 마틴의 소유주는 아톰을 타고 16만km가 넘는 거리를 주행하는 기록을 세웠고 자금난에 허덕이던 애스턴 마틴을 구해줄 데이빗 브라운을 만나게 되는 것도 이 아톰을 시운전해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데이빗 브라운, 애스턴 마틴을 성장시키다.
(1946)

그렇다면 자금난에 허덕이던 애스턴 마틴을 구해준 데이빗 브라운, 그의 이니셜 DB를 붙여 만든 차량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을 정도로 역사적인 한 축을 세운 모델들을 그가 만들어냈다. 데이빗 브라운은 원래 트랙터와 같은 산업용 장비를 만드는 데이빗 브라운 그룹의 총수였으며 스포츠카에 대한 욕망과 열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원래 사용하던 1.5L 직렬 4기통 엔진을 과감히 버리고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 라곤다에서 2.6L 직렬 6기통 트윈 캠 엔진을 사용하기 위해서 엔진을 구입하지만 너무 비싼 나머지 그는 아예 라곤다 회사를 매입해버린다. 이러한 이유로 애스턴마틴과 라곤다가 함께 길을 걷게 된다.

 

2-litre sports(DB1)
(1948)

데이빗 브라운이 애스턴 마틴을 장악하고 그의 이니셜이 담긴 DB 시리즈가 나오기 전 먼저 2-리터 스포츠 라는 이름의 차량을 제작한다. 이 차량의 이름은 '2-리터 스포츠'라고 불리지만 다음에 등장한 DB2 때문에 DB1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리터 스포츠에는 2.0L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최대 90마력의 출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워낙 차체가 넓고 뚱뚱한지라 무게가 꽤 나갔고 이로 인해 최고시속은 145km/h까지 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데이빗 브라운 시리즈의 시작, DB2
(1950)

라곤다를 매입한지 2년이 지난 후 DB2 시제품 3대를 가지고 르망 레이스에 출전하기도 하였고 당시 완벽하지 못했던 라곤다 6기통 엔진을 보듬어 미국에 수출까지 했다. 공식적으로 1950년에 출시한 DB2는 3.0L 직렬 6기통 엔진으로 최고출력 140마력의 성능을 발휘하였고 시속 100km/h에 도달하는데에는 10.5초의 시간이 걸렸다. DB2는 뒷좌석 2개가 더 추가된 4인승 모델, 기존 DB2를 보완한 마크2 버전이 나오는 등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DB2는 강력한 성능의 스포츠카인 만큼 르망 레이스에서도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1950년에는 3리터 클래스에서 1위와 2위를 연달아 차지하였고 이듬해 다시 참가한 레이스에서 1,2,3위를 모두 차지하며 굉장히 좋은 성적을 만들어냈다.

 

레이싱을 위한, DB3
(1951)

DB3에는 라곤다에서 제작한 2.6L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었고 163마력의 출력을 발휘했다. DB3를 가지고 르망 레ㅔ이스에 출전하였을 때는 좋은 성적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굿우드 9시간 내구 레이스에서는 나름 괜찮은 성적을 만들어낸다.

DB3와 함께 훨씬 더 레이스에 초점을 맞춰 맞춰진 차량이다. 이는 레이스에 최적화하기 위한 바디워크와 냉각을 위한 커다란 라디에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전체적인 차량의 디자인은 유려한 곡선미의 아름다움까지 뽐내고 있다. DB3S에는 3.0L 직렬 6기통 엔진이 장착되어있었고 최고출력은 217마력, 시속 100km/h까지 6초면 충분했다. 시속 241km/h까지 도달할 수 있는 굉장한 성능과 함께 다루기 쉬운 핸들링으로 당시 많은 레이서들이 DB3S에 매료되기도 하였다.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를 위하여, DBR1
(1957)

지금까지 애스턴 마틴이 참여한 레이스는 24시 내구 레이스가 아닌 일반 레이스였다.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 출전하고 싶었던 애스턴 마틴은 DBR1을 제작해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 참여하게 된다. 결국 DBR1은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서 애스턴 마틴에게 우승을 거머쥐게 해주게 된다.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3.0L 직렬 6기통 엔진이 탑재되었고 최대출력 260마력에 최고시속은 257km/h에 도달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었다.

 

진정한 애스턴 마틴, 진정한 GT카, DB4
(1958)

1958년에 공개된 DB4는 애스턴 마틴에서 만든 모델 중에서 가장 열광정이었고 완벽한 그랜드 투어러에 해당하는 차량이었다. DB4가 공개되고 애스턴 마틴은 페라리만큼이나 유명해졌고 당시 자동차 전문매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빠른 자동차'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DB4의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디자인 전문업체이자 코치빌더인 투어링(Touring)사에서 진행했고 새롭게 만들어진 직렬 6기통 엔진과 데이비드 브라운의 4단 수동 변속기가 장착되었다.

3,670cc 직렬 6기통 엔진에서는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240lb.ft의 성능을 발휘하고 최고시속은 225km/h에 도달한다. 패스트백 형식의 디자인으로 차량은 스포티해보이는 동시에 실내공간을 넓혔고 적절한 짐 칸으로 충분히 그랜두 투어러로써의(장거리 여행을 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DB4의 디자인은 차후에 제임스 본드의 자동차 DB5는 물론 DB6까지 이어지게 된다.

 

레이싱의 피를 속일 수는 없지, DB4 GT
(1959)

애스턴 마틴은 DB4를 만족스럽게 만들어냈지만 더 강력한 성능에 목말라있었다. 그리하여 DB4를 기반으로 1년 동안 조금 손을 본 뒤 파리 모터쇼에서 공개하게 된다. DB4 GT는 기존 DB4에서 13cm 더 적은 휠베이스를 가졌고 같은 직렬 6기통 엔진으로 약 60마력 정도 더 향상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240lb.ft의 토크를 발휘했고 시속 100km/h까지는 6.1초면 충분했다.
강력한 성능과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만큼 DB4 GT는 레이싱에서 애스턴 마틴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전설의 레이서 스털링 모스는 프로토 타입을 가지고 1위를 차지했고 계속해서 포디움에 올라가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2편에서 계속...

 

2편 바로 보러가기!

 



글: 이기범 에디터(lgb03@naver.com)
사진: Netcarshow / 이외 사진 하단 표기
카테고리: 자동차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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