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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창립 70주년 기념 ] 페라리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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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llingkr 2018. 3. 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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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의 역사는 사진 속 청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진 속 인물은 바로 페라리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Enzo ferrari)이다. 엔초 페라리는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에서 1898년에 태어나 1988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자동차 산업에 많은 업적을 만들어냈다. 그는 모터스포츠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제작하는 스포츠카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였다.
그의 인생이자 페라리의 일대기를 알아보자.

 

 

Ferrari의 시작

 

 

엔초 페라리는 10살이라는 나이에 처음 접한 자동차 경주에 빠져 자동차를 좋아하게 된다. 그런 그가 1929년에 스쿠데리아* 페라리 라는 자동차 경주 팀을 만드는데 이 팀은 알파로메오 차량을 스폰해주며 경주에 참가하였다. 또한 엔초 페라리는 직접 카레이서로 경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스쿠데리아(scuderia)는 이탈리아어로 '팀'이라는 뜻이다.

 

 

그는 스쿠데리아 페라리팀을 운영하면서 알파로메오에서도 열심히 일하여 알파로메오에서 그를 모터스포츠 부서의 팀장으로 자리를 앉히게 된다. 하지만 알파로메오와 스폰서십 등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알파로메오와 좋지 않게 이별하게 된다.

 

 

 

Auto Avio Construzioni
페라리 자동차를 만들다.

 

 

 페라리는 알파로메오를 떠나고 1939년 'Auto Avio Construzioni'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직접 경주용 차량을 만들기 시작한다.  여기서 엔초 페라리가 '페라리'라고 이름을 짓지 못하고 'Auto Avio Construzioni' 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는 바로 알파로메오 때문이었다. 알파로메오는 떠난 페라리가 얄미웠는지 그가 그의 이름으로 4년간 회사를 설립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것이었다. 그로 인해 엔초 페라리는 'Auto Avio Construzioni'라고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첫 차의 탄생, Tippo 815
(1940)

 

 

Tippo 815는 Auto Avio Construzioni에서 제작한 유일한 자동차이다. 815란 명칭은 8기통 1.5L 엔진을 사용해서 붙인 이름이다. 피아트 500C 섀시를 가져와 제작하였으며 변속기는 피아트의 4단 변속기를 사용했고 최고 시속은 170km/h까지 도달할 수 있다.
당시 신기술이 적용되고 1940년부터 13번의 레이스에서 6번의 우승으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2차 대전이라는 또 한 번의 걸림돌
그리고 페라리의 시작

 

 Auto Avio Construzioni의 회사는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공장은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되면서 많은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폭격을 맞게 되어 현재 페라리 공장이 위치하고 있는 이탈리아 마라넬로에 '페라리'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다시 세우게 된다.

 

1947년, 드디어 페라리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회사로 제대로 된 경주용 차를 생산하여 경기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레이싱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공도 용 양산차를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70년 페라리의 양산차 생산이 시작된다.

 

 

페라리가 처음 만든 자동차, 125S
(1947)

 

 

125S는 페라리가 만든 최초의 경주용 차량이다. 당시 125S는 1.5L에 엔초 페라리가 그토록 바라던  V12기통 콜롬보 엔진*을 탑재하고 5단 변속기와 결합하여 최대출력 118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아쉽게도 125S는 경주용 차량이어서 3대 밖에 생산되지 못하였고 현재 남은 차량은 없다고 한다.
125S는 Tippo 815를 이어서 레이싱에 참가하였다. 1947년에 14번의 레이스를 참가하면서 6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우수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콜롬보 엔진: 조아키노 콜롬보가 설계한 엔진
(125S에서 S는 Sport의 약자이다.)

 

 

125S의 업그레이드 버전, 159S
(1947)

 

 

125S를 기반으로 업그레이드해 159S로 제작하였으며 역시나 1.9L V12 콜롬보 엔진을 장착하고 동일한 5단 변속기가 결합하여 7마력 정도 상승한 125마력의 힘을 낼 수 있다. 앞은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이 뒤쪽은 라운드 형 유압 서스펜션이 장착되었다.
159S 또한 레이스에 참여하여 우수한 실적을 만들어 페라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카레이서 레이먼드 소머(Raymond sommer)에게 차량을 인도해 토리노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는 실적을 만들어냈다.

 

 

양산 차량의 기반이 된 166S
(1948~1953)

 

 

166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우선 1948년 166S(Sport)와 166SC(Spider corsas) 두 대가 제작되었다. 두 차량은 2.0L V12 콜롬보 엔진을 장착하고 110마력에서 114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두 대의 차량은 레이스에서도 좋은 경주 실적으로 특히 밀레 말리아 경기에서 우승을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레이스를 기념하기 위해 페라리는 166MM*을 제작하였다. 166MM은 166MM LM으로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 참가하여 우승하는 등  모터스포츠에서 정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MM(Mille Miglia): 밀레 말리아 경기에서의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

 

 

페라리의 첫 양산차량, 166 inter
(1948~1953)

 

 

페라리에게 많은 실적을 가져다준 166 시리즈로부터 첫 양산차량을 만든다. 1949년 파리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되며 166 inter*는 페라리 최초의 GT카이자 최초로 고객들이 구입하여 도로에서 탈 수 있는 페라리가 되었다.
166 inter는  경주차량과 동일하게 V12기통 콜롬보 엔진을 장착하고 5단 수동 변속기와 결합하여 최고 시속 170km/h의 속도와 최대출력 110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단 39대만 제작되었으며 166 inter를 기반으로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 참가하여 우승하게 된다.

*inter: 페라리에서 제작한 초기 양산차에 붙은 이름

 

 

 

경주에 대한 열정, 195S
(1950)

 

 

166의 성공에 페라리는 이어 경주용 차 195S를 제작한다. 195S는 2대만 제작하였고 동일한 V12 기통 엔진을 탑재하였다. 아쉽게도 195S는 페라리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195S는 195 inter로 제작되었다. 195 inter는 1950년 파리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해 27대만이 생산되었다. 195 inter에도 콜롬보 V12기통 엔진이 튠업되어 장착되고 166 inter보다 80mm 더 긴 휠베이스를 갖추게 되었다.

 

 

 

195S 에 이은 세 번째 양산차, 212 inter
(1951~1952)

 

 

페라리에서 만든 세 번째 양산차는 212 inter이다. 212 inter는 코치빌더* 피닌파리나에서 디자인되었으며 이때부터 페라리와 피닌파리나와 돈독한 관계가 만들어져 많은 차량의 디자인을 피닌파리나에서 하게 되었다.
212 inter의 엔진은 역시나 V12기통 콜롬보 엔진이 장착되었고 최고속도는 약 187km/h이며 최대출력은 150마력의 힘을 내뿜었다.
총 82대가 생산되었다.

*코치빌더 (Coach Builder): 다른 회사의 엔진이나 섀시를 기본으로 하여 고객들이 특별 주문한 자동차를 설계 및 제작하는 회사를 말하며 백야드 빌더, 카로체리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존의 양산차량과는 다르게 대부분 소량 생산, 수제작으로 더욱 섬세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작업해 많은 애호가들이 선호한다.

 

 

 

미국을 위한 차가 아니다. 340 America
(1950~1952)

 

 

연이어 340 시리즈는 340 America*, 340 Mexico*와 340MM가 제작되었으며 340 America는 GT 카(양산차)로  제작되어 4.1L V12기통 엔진으로 220마력의 출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더 강력하게 만들어진 340MM은 280마력까지 출력을 낼 수 있었다.

*America, Mexico: 페라리 고급 양산차에 붙은 이름

엔초 페라리는 당시 생산되는 차량에는 빠른 속도에 신경 쓰고 무엇보다 제일 관심사인 경주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페라리는 1951년에 개최된 영국 그랑프리에서 숙적이었던 알파로메오를 제치게 된다.

 

 

 

가장 성공적인 양산차, 250S
(1952~1965)

 

250 라인업은 페라리가 양산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크게 성공한 양산차량으로 정말 많은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250S를 시작으로 250GT 베를리네타 루쏘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며 지금까지도 많은 컬렉터들에게 엄청난 금액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50GT SWB는 페라리의 숙적 람보르기니를 만든 차량으로 유명하다.
시리즈가 너무 많아서 대표적으로 최근에 거액에 거래된 250 GTO를 소개하겠다.

 

 

250 GTO
(1962)

 

 

 

250GTO는 1962년부터 제작되었다. 250 GTO는 12기통 엔진을 품고 최대출력 300마력, 최고속도는 280km/h까지 달릴 수 있다.
이런 250 GTO가 수집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36대만 제작된 차량 중 한 대가 2013년에 무려 600억 원에 거래가 되었다고 한다. 36대라는 희소성도 가지고 있지만 멋진 디자인과 퍼포먼스가 가치를 더하는 것 같다.

 

 

 

그 밖의 250

 

 

250 GTO를 제외한 다양한 250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250 GT Europa (1954)

250 GT California Spyder (1957)

250 GT Pininfarina (1958)

250 GT Lusso (1962)

 

 

 

페라리는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내면서 아쉽게도 인기 때문이었는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페라리는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196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피아트가 50%의 지분을 가지게 되어 2014년에는 90% 정도를 소유하게 된다.

 

 

 

아들을 기억하리라, Dino (206GT / 246 GT)
(1968~1974)

 

페라리에게는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 '알프레도'의 이름을 붙인 몸이 허약한 외아들이 있었다. 그의 아들은 페라리에서 열정적으로 자동차 개발에 몰두하였다. 그런 그가 가장 원했던 차량은 베이비 페라리였다. 그는 기존의 V12기통 엔진이 아닌 V6 기통 엔진을 탑재해 대중적인 페라리를 원했다. 하지만 V12기통 엔진의 전통을 이어온 아버지 엔초 페라리는 별로 원치 않았다고 한다.
자동차에 대한 열정도 잠시 허약한 몸을 가지고 있었던 알프레도 페라리는 24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게 된다. 결국 이 충격으로 어머니도 엔초 페라리와 함께 있지 못하고 엔초 페라리 또한 더욱 자동차 개발에 몰두하였다.
엔초 페라리는 그의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의 별명 'Dino' (알프레도(할아버지)의 작은 알프레도라 하여 알프레디노라고 불리었다고 함.) 의 이름을 붙이고 그가 원했던 V6 엔진을 장착한 차량을 만들어낸다.

 

 

페라리 디노에는 206 GT와 246GT가 있다. 206 GT는 1968년부터 생산을 시작했으며 총 152대가 만들어졌다. 엔진은 차량의 가운데에 얹어지고 당연히 2.0L V6 엔진이 5단 수동 변속기와 장착되었다. 이 엔진으로부터 160마력의 힘이 만들어졌고 최고 시속 235km/h까지 달릴 수 있었다.

 

246 GT는 2.4L V6 엔진을 장착해 업그레이드된 성능으로 출시하였다. 출력은 35마력 상승한 195마력의 출력을 지녔으며 최고속도는 3km/h 빨라진 238km/h이었다. 또한 246 GT는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는 스파이더 모델 246 GTS도 출시하였다.
그렇게 디노는 6기통 엔진을 최초로 장착한 페라리가 되며 이후에도 8기통 엔진에도 가끔 디노라는 이름을 붙였다.

 

 

페라리의 슈퍼카, 365 GTB/4
(1968~1973)

 

 

365 라인업 중에서 가장 빛났던 것은 365 GTB/4 데이토나였다. 365 GTB/4는 여러 방면에서 우수해 페라리의 슈퍼카라고 하기도 한다. 특히 365 GTB/4 데이토나는 피닌파리나에서 디자인된 차체와 앞쪽의 자리 잡은 완벽한 엔진이 슈퍼카임을 들어내게 한다. V12기통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325마력으로 차량을 283km/h까지 치솟게 한다. 당시 1.6톤이라는 무거운 무게를 가지고 있어 코너링에서는 월등히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빠른 자동차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람보르기니를 견제하라, 512 Berlinetta Boxer
(1973~1985)

 

 

초기에는 365의 엔진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페라리가 만들어낸 숙적 때문에 페라리는 다급하였다. 당시 람보르기니는 최초로 엔진을 가운데 배치하는 미드십 구조의 '미우라'를 통해 선보이고 쐐기형 모양의 파격적인 '쿤타치'를 공개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결국 페라리는 디노에서 사용했던 미드십 구조의 노하우를 살려 기함급 차량에 미드십 엔진을 얹기로 한다. 하지만 그들이 얹은 엔진은 뱅크각이 180도인 복서(수평대항) 엔진이었다. 수평대항 엔진을 얹은 이유는 디자인 때문이었지만 주행성능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365 GT4 BB는 512로 업그레이드되었고 더욱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엔진은 기존의 수평 대항 엔진에서 직분사 방식을 채택하여 더 부드럽게 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512 기준) F12 수평대항 12기통 엔진으로 360마력의 힘을 내었고 최고 시속은 283km/h이다. 512 Berlinetta Boxer는 스포츠 카보다는 아쉬운 주행능력으로 GT 카에 더 가까웠다고 한다.

 

 

458 이탈리아의 조상, 308 GTB / 328 GTB
(1975~1985)

 

 

308 GTB는 베이비 페라리로 출시하였던 디노보다 더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탄생한 차량이다. 308의 디자인은 피닌파리나에서 디자인하였다. 엔진은 V8 엔진을 사용하고 이때 한 실린더에 4개의 밸브가 장착돼 당시 엔진을 콰트로 발보레 엔진이라고 불렸고 반응이 빨랐으며 출력은 252마력으로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고속에서는 재미를 선사한다고 한다. 최고 시속은 252km/h이었으면 제로백은 6.7초로 아쉬운 가속 능력을 보여준다.

 

 

308 GTB가 출시한 이후로 10년이 지나고서야 328 GTB가 출시되었다. 328 GTB는 더 커진 용량의 엔진을 장착하고 상승된 270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최고 시속은 267km/h, 제로백은 5.5초로 훨씬 향상된 성능을 보여주었다.

페라리는 양산차 생산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모터스포츠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명인사들이 애용하는 차량이 되었다. 페라리의 명성은 상승하였고 모터스포츠를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페라리 로고 이야기

 

 

노란 방패모양 바탕에 하늘을 향해 앞 발을 치켜들고 있는 검은 말고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약자를 적어놓은 S와 f, 이탈리아 국기의 삼색이 보이는 윗부분, 로고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한가지 사례만 얘기하자면 이 로고는 엔초 페라리의 레이스를 지켜보던 백작 바라카 부인이 그를 위해서 1차 세계대전 당시 죽은 아들의 전투기에 그려져 있던 문양을 행운의 상징이라고 건네주어 엔초 페라리의 차량에 부착하면서 페라리의 로고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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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editor GB (lgb03@naver.com)

카테고리: 자동차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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