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중형차 시장의 빅 4를 소개하자면 쏘나타, K5, SM5, 말리부를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차량이 있다. 바로 르노삼성자동차의 SM5가 그 주인공이다.
이건희의 꿈, 그리고 삼성자동차
삼성 그룹은 1995년 3월 28일 삼성자동차 주식회사라는 사명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자동차 애호가로 유명한 이건희 회장의 야심찬 프로젝트였지만 당시로서는 현대, 기아, 대우 등 오랜 노하우를 가진 굵직한 기존 자동차 업계에 비하면 삼성은 자동차 시장에서 만큼은 초심자라고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전자, 서비스, 건설 등 다양한 업종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삼성이지만 자동차 시장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닛산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첫 선보인 SM5가 높은 상품성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우려를 단번에 잠식시키며 국내 중형차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1세대(KPQ): 뛰어난 내구성과 상품성을 바탕으로 슈퍼 루키가 되다.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1998년 3월 26일에 첫 선을 보인 1세대 SM5는 당시 기술 제휴를 함께하던 닛산의 2세대 세피로(A32, 수출명 맥시마 4세대)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차량으로 전면부 디자인과 일부 디테일을 수정하여 출시하였기에 당시 자동차 기술이 전무한 삼성자동차에서 양산과 출시에 이르기까지 빠른 시일 이내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파워 트레인은 직렬 4기통 1800cc, 2000cc의 SR 엔진 2가지, V형 6기통의 2000cc, 2500cc의 VQ 엔진 2가지의 4개의 가솔린 파워 트레인과 LPG 파워 트레인의 총 5가지 라인업으로 구성되어 출시되었다. 변속기는 4기통 모델에서는 5단 수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었고 V6의 경우 4단 자동변속기가 기본 사양이었다. 자동변속기는 가솔린 모델의 경우 4단의 자트코(Jatco)제 변속기와 맞물렸고, LPG 모델의 경우 아이신(aisin)제 4단 변속기와 맞물려 도로를 누볐다.
서스펜션은 전륜에는 맥퍼슨 스트럿 방식을 후륜에는 토션 빔 액슬 방식을 적용했는데 토션 빔 액슬 방식이지만 스트로크 길이를 넉넉하도록 한 서스펜션 세팅과, 다소 강한 스프링에 부드러운 댐퍼의 조합으로 승차감이 스포티와 안락함의 밸런스를 적절하게 한 이상적인 토션 빔 엑슬의 세팅이었다.
또한 당시 동급 최대 수준으로 제공되는 3년 60,000KM의 보증수리 정책과 국내 최초의 불소도장, 아연도금이 적용된 강판, 백금 점화 플러그, 타이밍 체인 등 내구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가히 국내 최고 수준의 품질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동의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많은 오너들의 높은 만족도를 바탕으로 마케팅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오너들의 입소문을 타고 승용차 시장뿐 아닌 개인택시 시장에서도 높은 수준의 인기를 이끌어내며 높은 판매고를 이루어내었다.
동급 대비 큰 차체와 수준 높은 품질로 무장한 SM5는 단일 차종이었지만 4기통 모델로는 중형 차량을 타깃으로 소나타, 크레도스, 레간자와 경쟁하고 V6 모델로는 포텐샤, 뉴 그랜저 등의 준대형 차량의 하위 트림과 경쟁하는 위치에 포지셔닝 하는 전략을 펼쳤다고 볼 수 있다.
2001년 9월에는 르노삼성자동차의 출범 1주년을 기념한 에디시옹 스페시알(Edition Speciale)사양을 8400대 한정으로 판매하기도 하였다. 에디시옹 스페시알은 스페시알과 스페시알 플러스로 2가지 선택지가 주어졌으며, 외부에는 오리엔탈 골드 색상과 Speciale 레터링이 새겨진 엠블럼이 적용되었다. 내부에는 스웨이드 시트, 고출력 프리미엄 오디오, 핸즈프리, CD 체인저, 공기청정기 등의 다양한 편의 장비를 통해 촉각, 청각, 시각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사양을 갖춘 차량이었다.
1세대 SM5에는 당시에 공식적으로는 출시되지 않은 한정판 차량이 존재했는데 SM530L이라는 차명을 부여받은 차량이다. 해당 차량은 시장에 시판된 차량은 아니지만 약 10대 가량이 제작되었고, 이는 삼성그룹의 회장단 등 고위 임원 의전용과 단 한 대의 이건희 회장 전용 모델로 나누어진다. SM530L은 차명에 걸맞게 V형 6기통 VQ 3.0L 엔진을 탑재하였고, SM525V의 차체를 개량하여 만들어졌다. 임원단을 위한 차량은 10cm 연장된 차체를 사용했지만 이건희 회장의 단 한 대뿐인 차량은 20cm를 연장한 차량으로 주로 이건희 회장이 청와대 등 관공서를 출입할 시 탑승했다고 한다.
2세대(EX1/DF): 전작의 명성을 이어받은 명불허전의 중형 세단
‘변화를 즐겨라’ / ‘변하지 않는 가치’
2세대 SM5는 당시 닛산의 1세대 티아나(J31)을 기반으로 하여 디자인과 차체는 사실상 동일하게 출시되었다. 준대형급인 닛산의 티아나를 베이스로 출시되었기에 SM5뿐 아니라 조금 더 고급스러운 사양과 단정한 외모로 단장한 SM7이라는 상위 차종도 함께 출시했다.
준대형에 속하는 차량의 섀시를 공유했기에 2,775mm의 당시 동급 최대의 축간거리(NF 소나타: 2,730mm / 로체: 2,720mm / 토스카: 2,700mm)를 자랑하여 넓고 쾌적한 실내공간을 제공하는 차량이었다.
혁신적인 편의 사양도 다수 채택하여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의 NF 쏘나타를 위협할 정도의 아성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살펴보자면 통합형 공조기, 풋 타입 파킹 브레이크, 공기청정기 등이 있으며 그중 가장 돋보이는 사양은 중형 최초의 카드형 스마트키로 당시로서는 타사의 플래그십 차량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혁신적인 사양이었다.
또한 PE 트림을 제외한 전 트림에 불소 도장을 적용하여 1세대의 명성과 품질에 버금가는 우수한 내구 품질을 가졌다고 자랑할 수 있다.
다만 SR20-II 엔진의 출력이 동급의 경쟁 차량의 파워 트레인에 비해 빈약하여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했다는 점과 프로젝션 헤드램프 등이 적용되지 않았던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는 SM7의 출시로 인한 상품성의 제한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아쉬움이 남았지만 내구성능과 같은 자동차로서의 기본기가 충실했고 가격에 대비하여 풍부했던 사양을 무기로 긍정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2007년 7월에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치고 SM5 뉴 임프레션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외관은 페이스리프트 이전에 비해 굵고 강한 인상을 주어 남성적이고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마감되었다.
파워 트레인은 기존의 엔진을 개량하여 143마력(PS)의 출력과 20.0kg.m의 토크를 뿜어냈다. 변속기는 4단의 오토매틱 트랜스미션 만이 제공되어 이전까지 존재하던 수동변속기가 제공되지 않았다.
안전 측면에서는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모델보다 측면 안전성을 강화하여 KNCAP 기준 측면 충돌 부문 1등급(★★★★★)을 받아 사고 시 상해 위험을 줄였으며, 중형 차량 중 유일하게 적용된 프론트 듀얼 스마트 에어백을 포함한 6에어백 시스템, VDC, ISO FIX 고정 장치 등 안전 사양이 다수 보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NVH 측면에서도 개선되어 동급 차량에 비해 뛰어난 정숙성과 적은 로드노이즈, 이전에 지적받았던 다소 단단한 승차감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큰 변화의 폭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내실을 다지고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실용적인 패키징으로 마무리되어 소비자들의 높은 만족감을 이끌어 냈던 차량이다.
역대의 SM5 시리즈 중 처음으로 국외에서도 판매되기 시작한 차종이기도 한데, 모기업인 르노의 중동지역 판매차량으로 르노 사프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SM7에 탑재되는 V6 VQ 3.5L 엔진을 탑재하여 생산되기도 하였다.
3세대(L43): 프랑스 국적으로 귀화한 르노삼성의 최고참
‘Experience More’ / ‘차가 사람을 사랑할 때’ / ‘Better & Different’
3세대 SM5는 2010년 1월에 완전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였다. 기존의 SM5는 닛산 차량을 베이스로 하여 만들어진 차량들이었다면 3세대부터는 르노의 차량을 베이스로 하여 만들어진 차량이다.
전체적인 섀시와 플랫폼은 르노의 라구나(X91)를 기본으로 후륜부에는 국내의 환경에 적합하도록 2세대 모델의 베이스 차량인 닛산 티아나(J31)의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기반이 되어 적용되었다. 이를 통해 전반적으로 개선된 승차감과 주행 안정성을 보여준 것이 특징이었다.
파워트레인 또한 변화를 보였는데, 닛산의 MR20DE 엔진과 CVT 트랜스미션을 적용하여 141마력(PS)의 출력과 19.8kg.m의 토크를 낸다. 이는 이전 세대에 비하여 소폭 감소한 것으로 출력의 부족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2012년 11월, 페이스리프트 된 뉴 SM5 플래티넘을 선보였는데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오버행이 긴 디자인을 수정하여 기존에 지적받았던 디자인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2013년에는 출력과 연비 측면에서 더욱 향상된 SM5 TCE를 선보였다.
SM5 TCE는 닛산의 MR16DDT 1.7L 직분사 터보 엔진과 게트락(Getrag)제의 6단 건식 DCT를 탑재하여 190마력(PS)의 최고 출력과 24.5kg.m의 토크를 쏟아낸다. 또한 강력해진 성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SM7에 탑재되는 대구경의 브레이크를 적용하여 뛰어난 제동성능도 보여주었다.
이후 SM5 D라는 모델명으로 디젤 모델도 출시되었는데 QM3에 탑재되었던 엔진의 성능을 조금 높인 1.5L Dci 커먼레일 디젤 엔진과 게트락(Getrag)제 건식 6단 DCT를 탑재하여 110마력(PS)의 비교적 낮은 출력이지만 최대토크 24.5kg.m로 디젤 엔진의 높은 토크를 통해 답답함 없는 일상 주행 성능과 16.5Km/L의 우수한 공인연비, 2,000만 원 저렴한 차량 가격을 무기로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보이기도 했다.
2015년에는 또 한차례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새로운 얼굴과 SM5 노바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탄생하게 되었다.
SM5 노바의 가장 큰 특징은 LPG 모델이다. LPG 모델을 위해 200억 원의 개발 비용을 들여 기존의 원통형 LPG 가스 봄베를 도넛형의 가스 봄베로 개발하였고 스페어타이어 공간에 봄베를 위치시켰다. 이를 통해 기존 LPG 차량의 가장 큰 난제였던 트렁크 공간 확보가 가능해져 일반적인 차량의 트렁크 공간과 유사한 수준의 공간을 확보했다. 이러한 형태의 봄베는 이후 르노삼성의 LPG 차종에 전부 적용되었다.
또한 기존 SM5 LPG 모델의 약점이던 연비도 개선되어 복합연비 기준 9.6Km/l로 동급과 견줄만한 개선된 연비 수치를 보여주었다.
후속 차량인 SM6의 출시 이후에는 SM5 노바의 PE+ 트림의 명칭을 SM5 클래식으로 변경한 뒤 단일 트림으로 판매하였다.
SM5 클래식은 2,200만 원의 저렴한 가격과 준수한 상품성을 무기로 중형차뿐 아니라 준중형 차의 구매 시장도 공략하였고, 결과는 2017년 9월 한 달간 무려 855대를 판매하여 르노삼성 차량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보급형 중형 세단으로서 르노삼성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수행했다.
이제는 진짜 안녕을 고해야 할 때가 온 것일까? 2019년 6월 6일, SM5는 SM5 클래식의 이름을 SM5 아듀라는 모델명으로 바꾼 후 2,000대의 한정 차량을 2,000만 원의 가격에 마지막으로 선보인 후 공식적으로 단종을 선언했다.
더불어 르노삼성 라인업의 노후화를 대비하여 SM3, SM7도 함께 단종되었다.
이제는 추억 속에서 달리게 된 SM5
지난 2019년 8월 30일, 아듀 에디션을 마지막으로 생산이 종료되었다.
SM6가 SM5를 이어 르노삼성의 중형차량 라인업을 담당하게 되면서 SM5는 삼성자동차의 첫 차량이자 대표 중형 차량으로서 첫 출시 시점인 1998년부터 2019년까지 약 21년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흐르는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졌다.
또한 르노삼성자동차의 삼성 브랜드 이용 계약이 만료되어 추후 출시하는 신차에서 삼성자동차의 태풍의 눈을 형상화 한 다이나모 엠블럼을 볼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담긴 가족의 자동차, 누군가에게는 든든하게 달려주었던 직장동료, 누군가에게는 첫차의 설렘이 담겨있는 SM5는 이제는 더 이상 갓 출고된 신차로, 또 새로운 모델로 만나볼 수 없는 이름이 되었지만 여전히 도로 위를 누비며 우리 모두의 추억과 기억 속의 명차로 남게 되었다.
글: 이동현 에디터(yaya7070@naver.com)
사진: 르노삼성자동차
카테고리: 자동차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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