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 that was never Crowned"
스털링 모스 경(Sir Stirling Moss), 그는 포뮬러1(F1)의 역사이자 증인이였다. 그는 가장 위대한 영국 출신의 드라이버 중 한 명이였고, 영국 출신의 포뮬러1 선수 중 가장 많은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런 그가 90년의 긴 레이스를 마치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의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태생부터 레이서의 피가 흐르던 자
스털링 모스(Stirling Craufurd Moss), 그는 1929년 9월 17일 영국 런던의 웨스트 켄싱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이며 한편으로는 아마추어 레이서였던 알프레드 모스(Alfred Moss)였다. 그의 아버지는 레이싱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스털링 모스가 자신처럼 치과의사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스털링 모스는 레이싱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무릅쓰고 우수한 성적을 보이며 결국에는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스털링 모스의 레이서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수많은 경기와 수많은 승리, 무관의 제왕
스털링 모스 경은 통산 529회 출전 212회 우승, 포뮬러1으로 한정하더라도 66회 출전 16회 우승의 전설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1948년 쿠퍼500(Cooper 500) 레이스카를 타고 출전한 F3(Formula 3)를 시작으로 21세의 생일에는 RAC 투어리스트 트로피에서 첫 우승을 거머쥐었고 F2, 알파인 랠리, 몬테카를로 랠리 등 다양한 경기에 출전하며 레이스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이후, F1 그랑프리까지 출전하는 엄청난 기량을 보였다. 그러나 F1에서는 단 한번도 챔피언을 손에 넣지 못하였다. 당시 F1의 상위권 레이서였던 후안 마누엘 판지오를 제치고 선두를 차지하기도 하였으나 엔진 블로우로 인해 승리를 놓친 그랑프리도 있었고, 1958년 포르투칼 그랑프리에서는 스핀 후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마이크 호손의 차량을 막고 반대로 돌리도록 경고한 스포츠맨쉽이 돋보인 에피소드도 있었다.
함께 달려온 다양한 레이스카
다양한 레이스에 출전했던 만큼 함께했던 레이스카와 제조사도 다양했다. 우선 처음으로 몰았던 레이스카인 Cooper 500은 쿠퍼사에서 만든 레이스카였다. 쿠퍼는 과거 영국에 존재했던 자동차 제조사로 오픈휠 포뮬러 레이스카를 제조했었고 로버 미니를 개조하여 랠리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현재에는 BMW 산하 미니 브랜드의 고성능 디비젼을 담당하는 그 이름이다. 그의 레이스에는 재규어 XK120, 재규어 C-Type, 애스턴마틴 DBR1, 페라리 250 GT, 마세라티 250F, 메르세데스 벤츠 W196 등 많은 자동차가 함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300SLR이다. 스털링 모스는 722번 엔트리를 부착한 메르세데스 벤츠 300SLR을 타고 1955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밀레밀리아에서 우승을 손에 넣었다. 이에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멕라렌과 합작한 슈퍼카 메르세데스 SLR 멕라렌을 만들었을 당시 2007년에는 722에디션을, 2009년에는 SLR Stirling Moss를 한정 생산하기도 하였다.
1929년 - 2020년, 역사 속 별이 되다
그가 떠나던 2020년 4월 12일에는 수많은 자동차 제조사, F1 관계자 등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했다. 그는 F1의 초대 거목이였고, 영국 모터스포츠의 최고였던 사나이였다. 이제는 역사 속 인물로 기억될 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며 그의 명복을 빈다.
「 R.I.P Sir Stirling Craufurd Moss(1929-2020) 」
글: 이동현 에디터(yaya7070@naver.com)
출처: F1, Netcarshow, Twitter
(Mercedes AMG F1, Ferrari, Aston Martin,
JensonButton, Lewis Hamilton)
카테고리: 모터스포츠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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