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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빠른 자동차, 부가티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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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llingkr 2018. 1. 16.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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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는 항상 최고 성능을 발휘하고 다른 차량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예술성을 자동차 디자인으로 녹여낸다. 부가티는 다른 회사와는 다르게 무려 백 년 동안 지금과 같은 위상을 항상 지켜오고 있다. 과연 부가티는 창업 이후 어떻게 지금까지 같은 위상을 지켜오고 있는지 부가티의 역사 속에서 알아보자.

 

 

 

최고의 자동차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 1881~1947)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카를로 부가티는 유명한 조각가이자 보석 디자이너이자 가구 디자이너이다. 참고로 영화 에일리언 커버넌트 영화 첫 장면에서 인조인간 데이빗이 앉아있는 의자가 바로 카를로 부가티가 디자인한 의자이다. 그가 디자인한 가구들은 예술성을 인정받으며 많은 명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에토레 부가티의 가족들을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예술계에 있을 정도로 뿌리부터 예술과 관련이 있는 집안이다. 그런 그가 어쩌다 자동차에 빠지게 되었을까?

 

 

그가 자동차에 빠지게 된 계기는 바로 아버지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예술 계통에서 유명한 가문이어서인지 부가티의 집안은 넉넉한 돈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 카를로 부가티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한참 뒤 증기기관을 이용한 삼륜차를 만드는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카를로 부가티가 삼륜 자동차를 만들게 되면서 에토레 부가티는 17세부터 자연스레 자동차에 접근하게 되었고 자동차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며 기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제작한 삼륜차를 경주에 출전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그는 기계(자동차)와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이 예술보다는 자동차와 더욱 각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그는 이탈리아 태생이지만 당시 모터스포츠로 굉장히 유명한 프랑스(몰사임)에 자신의 가문의 이름을 건 자동차 회사 부가티 사를 1909년에 설립하게 된다. 부가시 사의 로고는 에토레 부가티의 이니셜로 만들었으며 이 로고 속에서 그의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다. 
에토레 부가티는 자동차를 만들면서 자기 나름 가지고 있던 미의 기준을 가지고 예술성이 강하고 사치스럽지만 고급스러우면서 강력한 성능을 가지고 있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자동차를 개발하였다. 그런 그가 만든 자동차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부가티 사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보자.

 

 

 

Art Forme Technique

 

 

회사 설립 전
이탈리아 밀란에서 제작한 그의 자동차

 

 

 

 

에토레 부가티의 첫 시도, Type 2
(1901)

 

 

에토레 부가티가 20살이 되었을 때 그는 혼자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무리였기에 De Dietrich 사와 함께 같이 개발하였다. 타입 2는 단 한 대만 제작되었으며 4기통의 엔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엔진에서 나온 동력은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치 오토바이처럼 체인을 통해 뒷바퀴로 동력을 전달하였다.

 

 

타입 2는 프랑스 자동차 클럽(현, FIA 국제 자동차 연맹)으로부터 상을 받아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가티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자동차 자체는 완벽하였지만 같이 차량을 개발하였던 두 형제 중에서 한 명이 죽자 더 이상 자동차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차량 설계에 대한 라이선스를 De Dietrich 사가 사버렸고 결국 에토레 부가티는 De Dietrich 사에서 기술을 담당하게 되며 새로운 자동차를 개발하게 된다.

 

 

노하우를 쌓다. Type 5
(1903)

 

De Dietrich 사에서 개발을 담당하게 된 에토레 부가티는 이전에 만든 차량에서 더욱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타입 5를 만들게 된다. 타입 5는 동일한 4기통 엔진으로 똑같이 체인을 이용하여 동력을 전달하였다. 45마력의 최대출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2대가 만들어졌다. 또한 튜브 프레임을 장착하여 냉각 효과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에토레 부가티는 실생활에서 타고 다니는 실용적인 자동차 보다 레이스 카 제작을 더욱 간절하게 원했다. 양산용 자동차를 만들려고 하는 De Dietrich 사와 에토레 부가티와 의견이 맞지 않자 결국 에토레 부가티는 계약을 마치고 자신만의 회사를 만들게 된다.

 

 

 

1909년 부가티 사를 설립하다.


 

1909년 에토레 부가티는 프랑스 몰사임에 위치한 폐기된 염료 공장에서 그의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는 회사를 세우고 바로 자동차 개발에 들어가며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어낸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가 프랑스에 자신의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당시 프랑스에서 모터스포츠의 열기가 뜨거웠기 때문이다.

 

 

부가티 사에서 제작한 첫 번째 자동차, Type 10
(1909)

 

타입 10은 에토레 부가티가 부가티 사를 처음 설립하고 만든 차량으로 500kg이라는 굉장히 가벼운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부가티와 함께 일해온 오랜 조수가 이 차량을 가지고 레이스에 출전하며 부가티 사가 모터스포츠에 도전하게 된다.
타입 10은 각 실린더마다 2개의 밸브가 있는 직렬 4기통 엔진 장착하고 4단 변속기와 결합하여 20마력의 최대출력을 발휘하였다. 타입 10은 1909년부터 1914년까지 제작하였다.

프랑스 그랑프리에 도전하다. Type 13 Brescia
(1911)

 

부가티는 타입 10에 힘입어 타입 13, 15, 17 등을 만들어내며 점차 발전해나갔다. 타입 17은 8기통 엔진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타입 13은 부가티 사의 레이서가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2위를 하는 등 다른 경쟁사보다 월등히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우수한 성적을 발휘한 타입 13은 '타입 13 브레시아(Brescia)로 거듭나며 완벽한 레이스 카로 변신하고 있었다. 타입 13 브레시아는 4기통 엔진을 장착하고 4단 수동 변속기와 결합하여 4,500rpm에서 최대출력 30마력을 발휘하였으며 450kg이라는 매우 가벼운 무게를 보여주었다. 또한 4기통 엔진은 다른 차량의 엔진보다는 작지만 높은 토크를 가지고 있고 차량의 가벼운 무게로 인해서 무거운 차량들을 쉽게 이겼다고 한다.
타입 13은 1920년에 첫 우승을 거두며 지금까지 레이스 카의 중량과 출력비의 교과서 같은 존재로 남았다고 한다.

 

 

1차 세계 대전을 도약점으로
(1915)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부가티 사에서는 프랑스와 미국 정부를 위해서 비행기 엔진을 생산했다. 그들은 이때 제작한 엔진에 대한 라이센스로 많은 돈을 벌게 되고 전쟁이 끝난 후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직원이 1,000명이나 늘게 되었다.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 Type 32 / Type 35
(1923)

 

1923년 부가티는 다른 회사가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모터스포츠를 무대로 시도하였다. 부가티는 차량 주변에 차체를 덮으면서 달리면서 발생하는 공기저항을 생각하였다. 비록 이 차량은 짧은 휠베이스로 컨트롤이 좋지 못하였고 차량의 속도도 빠르지는 않았지만 3위로 결승선은 통과하였다. 또 이 차량을 통해서 다른 많은 회사들이 레이스에 있어서 공기저항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좋은 계기였다.
언론에서는 이 차량을 보고 1차 세계대전에 사용했던 탱크와 같다고 하여 '탱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타입 35는 부가티를 상징하는 차량일 정도로 굉장히 큰 영향력을 미친 차량이다. 타입 35는 2,000번이 넘는 우승을 차지하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달린 레이스카이다. 거기에 마치 물방울과 같은 유선형 디자인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또한 부가티는 이 차량을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하면서 서킷과 공도 두 도로에서 동시에 탈 수 있게 되자 더욱 매력적인 차량이 되었다.

 

부가티 타입 35는 직렬 8기통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4단 변속기와 함께 5,500rpm에서 90마력의 최대출력을 발휘한다. 1924년부터 1931년까지 생산되었으며 300대 이상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차체를 만들다. Type 41 Royal
(1926)

 

부가티에서 스포츠 성보다 고급성을 강조한 모델이 나왔다. 타입 42 로얄은 에토레 부가티가 디자인하였으며 귀족들을 위한 차량이었다. 차량은 고급스러움을 위해서인지 굉장히 큰 차체를 가지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큰 차로 뽑히기도 하였다. 부가티는 고급스러운 차에도 강력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직렬 8기통 엔진과 3단 수동 변속기와 함께 결합하여 1,800rpm에서 300마력의 최대출력을 발휘하였다.

 

 

역사상 최고의 8기통 차량을 만들어내다. Type 44
(1927)

 

타입 44는 타입 38 모델을 대체하기 위해서 제작한 차량으로 3리터 직렬 8기통 엔진을 탑재하였으며 4단 변속기와 결합하여 80마력의 출력을 발휘하였으며 기본 차체 의외에도 고치빌더에 의해 다양한 차체로 제작되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부가티에선 가장 성공적인 8기통 차량으로 손꼽고 있다.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

 

부가티는 귀족들을 위한 멋진 양산차량을 제작하면서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도 식지 않았다. 부가티는 타입 35를 가지고 다양한 모터스포츠에 참여하면서 우수한 성적을 만들어냈다. 타르가 피오리노 대회에서는 총 2번의 우승을 해냈고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도 연속 3번이나 우승을 해낸다. 이때 드라이버 중 한 명이었던 루이 시론이 현재 새로 출시한 차량의 네이밍이 되었다.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장 부가티의 작품, Type 55
(1931)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장 부가티가 그 나름대로의 예술성을 담아 새로운 차량을 디자인하였다. 타입 55는 그랑프리 레이싱에서 사용하던 엔진을 장착한 투어링카였으며 원래 무거운 16기통 엔진을 장착하려던 섀시를 개조하여 새로운 섀시로 만들어냈다. 강력한 섀시를 가지고 있는 로드스터 투어링 카는 직렬 8기통 엔진으로 130마력의 출력을 발휘하였으며 총 38대만이 제작되었다.

 

 

 

 

 

 

 

 

2편에서 계속...(터치 or 클릭)

 

 

 

 

 

 

글: editor GB (lgb03@naver.com)

사진출처: Bugatti.com

카테고리: 자동차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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